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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미의 가족 INSIDE] 용서의 딜레마
글쓴이
홍보담당
작성일
2020.09.11
조회
8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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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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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미의 가족 INSIDE] 용서의 딜레마

 

송유미교수
사회복지학과 송유미 교수

무조건적인 용서만이 해결책일까

분노와 슬픔의 과정을 겪어내야

고통스러운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져

 

 

50A씨는 어린 시절 겪었던 아버지를 잊을 수 없다.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고, 많이 배웠고 돈도 많이 벌어다 주었다. 그러나 술만 마시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엄마를 때리거나 집기를 부수는 등 집안을 온통 공포 분위기로 만들었다. 7살 기억으로 아버지가 휘청휘청 걸어오면 가슴에서 이런 소리가 요동쳤다. ‘어디로 숨을까.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죽여주세요. 우리 엄마를 구해 주세요.’ 살아계신 팔순의 아버지를 이젠 겁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내는 소리에 여전히 민감해지고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A씨는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면서 용서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크게 용서받았는지를 잊어버린 사람이란다. 예수님이 자신을 영원한 죽음과 고통에서 건져 주셨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조건 없이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면서. 그래서 A씨는 수도 없이 아버지를 용서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고, 용서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움은 여전히 스멀스멀 올라왔다. 괴로워 또 하나님을 붙들고 용서해달라고 기도하기를 수십 년째. 남성이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거나 여성이 앙칼지게 대들면 식은땀이 흐른다. ‘주님, 저들을 용서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조곤조곤 상대방을 안정시키고 나면, 두 다리가 풀리고 기진맥진한다. 당장은 일이 종료된 듯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억울함에 견딜 수가 없다.

 

용서했는데 용서가 안 되는 용서의 딜레마였다. A씨는 아버지를 무조건 용서해달라고 했고,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고, 스스로를 불편해했다. A씨는 무조건적인 용서가 내적 평화를 이루는 첫걸음이자 유일한방법이라고 믿고 있었다.

 

용서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복수하고 싶은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책임감에 뒤따르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복수의 순간은 달콤하지만, 복수는 자신과 복수 대상 사이의 정서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복수하고 싶은 욕구를 떨쳐버리는 것이 어렵기는 해도 복수심을 떨쳐버려야만 건강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용서의 다른 한 면은 그렇게 명확한 게 아니다. 순진한 아이를 그토록 심하게 학대한 부모를 아이가 일방적으로 무조건 용서해야 하는가. 그토록 두려움에 떨게 하고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를, 어린 시절을 지옥으로 만든 아버지를 왜 용서해야 하는가.

 

무조건적인 용서는 위험하다. 아이에게는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리고, 꽉 막혀 있던 감정을 발산할 기회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A씨처럼 이미 용서한 아버지에게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면 책임은 두 갈래 길로 갈 수 있다. 상처를 준 사람에게 가거나 자신에게 가게 된다. 분명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A씨가 일방적으로 아버지를 용서한다면 그 대가로 A씨는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A씨가 아버지로 인한 불안감과 억울함에서 빠져나오려면 아버지를 용서하기 전에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처부터 대면해야 한다. 이때 자신의 종교적인 믿음과 심리적인 욕구가 모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켜야 한다. 어린 시절을 파괴하고 어른이 된 후에도 무력하게 살아가게 만든 부모를 비난해야 한다.

 

용서를 하더라도 정서적인 앙금이 완전히 가신 후에 해야 한다.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화를 낼 필요가 있고, 그토록 갈망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슬퍼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A씨가 자유를 얻으려면 분노와 슬픔의 과정을 겪어내고, 잘못된 책임을 원래 주인인 부모에게 돌려줘야만 한다. 진정한 자유는 일방적인 용서보다는 필요한 정서적 작업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출처: 영남일보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70706.0102107462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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