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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정연수 학우(재활학과)
글쓴이
담당자
작성일
2014.03.31
조회
9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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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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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라이프 인물탐방 - 단국대학교 전임교수 임용(재활학과 졸) 정연수 동문 진정 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 연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단국대학교 특수교육대학원 직업재활교육 전공 교수로 임명된 정연수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직업재활이 진정으로 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이 되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할 계획입니다.

단국대 교수로 채용되신 과정 및 소감
제가 단국대 교수가 된 과정은 우선 특수교육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고 특수교사자격 취득과 함께 졸업 후 특수학교에서 전공과 학생들의 직업교육을 실시하면서 가졌던 우리나라의 직업교육현실에 대한 문제제기가 박사논문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것이 저의 지금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고 봅니다.
특수학교 전공과 학생들의 취업지도를 맡게 되면서 현실과 맞지 않는 직업교과교육의 문제점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박사논문의 주제를 찾았고 연구를 위한 소재를 찾는 과정에서 대구사이버대학의 재활학과를 알게 되었는데 교육과정 및 교과목을 보니까 저의 연구를 위한 기본 지식형성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입학해서 학습을 시작하면서 교과목들과 그 내용들을 살펴보았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제게는 많은 기초지식을 주었고 장애인 직업재활과 관련된 지식을 형성해 가는 것이 마치 보배를 얻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는 교사생활과 박사논문 그리고 재활학과 진도를 따라가느라 폐렴까지 오기도 했는데 모두 마치고 나니까 그런 시간들이 추억이 되는군요.
단국대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박사취득 후 교육대학원과 특수교육대학원에서 '특수교육학개론' 강의를 시작하면서 특수교육과의 인지도가 높은 단국대에 앞으로 전망이 있는 직업재활전공이 왜 아직까지 개설되지 않고 있는지 고민하던 중 박사과정의 지도교수였던 특수교육대학원장님이신 박원희교수님과 단국대 특수교육대학원의 직업재활교육전공 개설에 대해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그동안 본인도 생각하고 있던 일이라 하시면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와보라 하시더군요. 그래서 초안을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특수교육대학원장님과 교학과 실무과장님 그리고 제가 직업재활교육전공 개설을 위한 계획안을 학교에 보고하게 되었는데 총장님 승인이 이루어졌고 또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전공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공개설 후 1년 후인 지난겨울 저도 단국대 직업재활교육 전공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교수가 되었다는게 너무 영광스러우면서도 특히 제가 연구하고 싶었던 분야를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좌측사진 재활복지학과 단체사진. 우측사진 정연수 학우 정면 사진

나의 첫번째 대학시절과 야학교사
처음 대학은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심취했던 독일 문학작가들 헤르만 헷세, 괴테, 루이제 린저, 그리고 시인 중 하인리히 하이네, 릴케 등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던 점과 펜팔친구였던 독일친구들의 삶의 모습의 주체적이고 분명한 모습에 매료되어서 시작했던 전공이었습니다. 그러나 관심과 현실은 다르더군요. 저의 고등학교는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여자 고등학교였는데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저의 성적을 가지고 서울대 사범대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가기 원하셨습니다. 물론 집에서도 저를 설득하려고 애를 쓰셨고요.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들어간 전공은 이후 저의 삶과 엇갈러 갔습니다. 대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 열심히 번역에 몰입해 있는 제 자신을 돌아보니까 마치 앵무새가 남의 말을 따라 하는 것과 같은 자신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독문학에 대해 소홀해지기 시작했고 국문학과 강의와 사학과 강의를 찾아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문학은 하고 싶었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저의 글을 쓰는 배경은 교육현장이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야학을 시작했습니다. 1980년 중반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도시빈민촌이라 불렀던 판자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상계동, 천호동, 그리고 하월곡동이었는데 저는 상계동(지금의 노원역부근)에서 야학교사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보수로 대학교 4학년까지 거의 몰입했습니다.
대학재학 당시에 야학교사생활을 하면서 저는 저의 수업까지 준비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14살부터 25살까지로 구성되었던 학생들이 낮에는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밤에 피곤한 몸으로 공부하러 오는데 그들을 그대로 두고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 중에는 야근 안하고 공부하러 간다고 정문앞에서 작업반장에게 붙들려서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정문앞에서 그들을 기다리면서 제가 목격한 모습들은 다양했습니다. 당연히 학교 성적은 내리막길이었고 당시 저의 지도교수였던 안삼환교수님께서는 저를 졸업시키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저와 고려대 독문과 학생들에게 야학을 하도록 장소를 제공해주신 분은 당시 새생명교회 담임목사님이었고 함석헌 선생의 제자분 이었습니다. 그분 성함이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이후 세월이 지났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것과 연계성을 찾으려고 2000년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졸업 후 단국대특수교육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단국대 특수교육대학원을 2004년에 입학했으니까 거의 10년을 계속 공부를 한 셈입니다.

대구사이버대학교를 다니면서 힘들었거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특별히 힘들거나 한 기억은 없어요. 재미있었던 기억이 오히려 더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의 경우 박사논문과 대구사이버대학교 수업을 같이 병행을 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정보나 도움되는 점이 많았어요. 사실은 대구사이버대학교가 제 인생에 터닝포인트에요. 오늘날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건 직업재활을 했기 때문에 직업재활전공 교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좌측사진 제5회 재활학과 현장실무연수 단체사진. 우측사진 연수 중 특강 사진

대구사이버대학교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공부할 나이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중 일부를 떼어내어서 학업에 열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학생활을 관심과 호기심으로 지금의 대구사이버대학교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차원에서 그리고 자신의 삶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심사숙고해서 선택하신 만큼 학점관리 잘하시고 졸업을 하시게 되면 자신이 생각했던 진로에 한걸음 다가가 있는 자신을 돌아보시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중간에 포기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교수님들, 학우들과 자주 교류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나의 인생 후반기의 가장 큰 인적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DAEGU CYBER UNIVERSITY 인터뷰속의 인터뷰. 정연수 재활학과 영상 바로가기 이미지
인터뷰속의 인터뷰 - Story in '정연수 학우'
게시글 메모
  • 박정미2014-04-04 오전 12:32:23
    대단하시네요, 인생의 터닝포인트! 선생님 인터뷰를 보면서 많은 에너지를 받고 갑니다. 축하드립니다^^
  • 최병임2014-04-07 오후 8:54:58
    정연수 교수님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좋은 본이 되어주심에 힘을 얻어갑니다.
  • 김유순2014-05-15 오후 9:16:25
    축하드립니다. 교수님의 야학 봉사를 보며 저를 지도해 주신 야학선생님들이 더욱 생각납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저를 지도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감사드립니다.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는 심정이 어떤지 잘 알기에 이렇게 좋은 일을 해 주셔서 복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기에 제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으실 것 같아요.
  • 정대화2014-06-08 오전 10:47:33
    정말로 노력이 대단하십니다.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뭐이든지 하면 된다고 하지만, 막상 시작하게되면 쉽지 않는 것이 다반사 였던가요, 특히 공부는 더 그런것 같아요, 앞으로 더 큰발전과 영광이 있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