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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유미의 가족 INSIDE] 어린 시절을 도둑맞은 기러기 아빠
글쓴이
홍보담당
작성일
2020.06.12
조회
4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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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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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하는 부모 대신해 3명의 동생 돌봐

부모화 경험으로 우울증·의존증 등 생겨

감정처리 제대로 못하고 고통스럽게 살아

    

 송유미교수

대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송유미 교수

 

지인을 통해 만난 40대 후반의 교수 A씨는 자신을 혼자 떠다니는 나무배라고 했다. 파도는 잔잔하나 사방에는 아무도 없는 나무배. 어디로 흘러가는 듯하지만, 목적지가 없어 공허하고 막연한 느낌. 그런데 그 감정은 최근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지금도 그 감정은 스멀스멀 기어오른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공부에, 연구에 더 몰두했고, 그 덕분에 늘 앞서 있었다고 한다.

 

A씨는 기러기 아빠다. 일찌감치 두 아들을 아내와 함께 미국생활을 하게 했다. 아내는 평소 시댁과의 갈등이 많았고 그럴 때면 아내에게, 또 친가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내는 시댁의 불만을 늘 자신에게 퍼부었고, 반복되다보니 아내와도 사이가 좋진 않았다. 유학시절 가족 모두 미국에서 생활했던 터라, 지금 아내와 두 아들은 영어가 유창하다. 두 아들은 유명 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아내는 자신의 전문성을 키워가고 있고 한인회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한국에 올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에 A씨는 연구에 집중하다보면 외로울 새도 없고 오히려 편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친가와의 갈등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되니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A씨는 4남매 중 장남으로, 아버지는 원양어선 마도로스라는 직업적 특성으로 길게는 3, 짧게는 1년을 해외로 나갔다. A씨는 엄마에게는 남편이, 동생들에게는 아버지가 되어 주어야 했다. 엄마가 아침 일찍 일을 나가 밤늦어서야 돌아올 때는 꼭 이렇게 말했다. “숙제해라. 그리고 동생들 잘 돌봐주고, 밥도 꼬박꼬박 챙겨주어야 한다. 동생들 다치지 않게 잘 돌봐주고 숙제도 봐주고. 형이 잘 해야 동생들이 본받는다. 알다시피 아버지가 없으니 남들이 손가락질 안 하도록 너가 잘해야 한다.” A씨는 늘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릴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A씨에게는 어린 시절이 없었다. 어린 시절을 도둑맞은 셈이다. 전형적인 부모화의 사례다. 부모화란 부모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자녀가 맡게 되는 현상으로 방임의 한 형태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족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행동을 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데, 부모화된 자녀는 부모가 해야 할 일을 조성하고 수행하며 부모를 돌보는 역할도 한다. 어린 시절의 부모화 경험은 우울 문제, 애착 및 대인관계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전반적인 정신문제, 불안, 약물남용, 의존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또 부모로부터 자아분화가 지연되어 자율적인 자아정체감이 형성되기도 어렵다.

 

일을 해야만 편하다는 A씨의 말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박탈당한 어린 시절의 삶과 어른이 된 지금의 삶을 보상받으려는 마음, 외로움을 견디려는 마음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바라는 걸 충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오래된 믿음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일하는 동안은 자신이 가치 있는 인간이며, 자신의 책임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는 셈이다.

 

A씨처럼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악순환의 사슬에 얽매이는 수가 있다. 전부 자기가 책임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임을 다해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할 것 같은 최면에 걸려 녹초가 되고, 그때마다 무력한 데서 오는 허무감을 갖는다. 감정도 단순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깊은 감정을 주고받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통스럽고, 그 과정이 되풀이되자 아예 자신은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게 된다.

 

A씨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필자는 아내와 친가를 향한 감정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해 겪어야 했던 좌절감과 어려움에 공감하며,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는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아무도 어린 A씨에게 그런 점을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이며, 그를 몰아붙이기만 했다는 걸 설명했고, 이제는 고칠 수 있다는 걸 이해시켰다.

      

 

출처: 영남일보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60929.0102108113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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