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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정영애 학우(특수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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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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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라이프-캠퍼스인물탐방 정영애 학우(특수교육학과).
사진-정영애 학우 독사진
정영애 학우 소개
요즈음 식 나이로 말하면 저는 올해 5학년 2반으로 특수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정영애입니다. 나이를 적을 때 52라는 숫자보다 쉰둘이라는 글자가 훨씬 늙어 보인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게 되었네요. 다행히 정신연령이 낮아(?) 늘 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원한 자유를 위해 철없이 독신을 부르짖다 엉뚱한 곳에서 똑같이 독신을 주장하던 지금의 남편과 코드가 맞아 의기투합하였습니다.
자유를 버리고 달콤한 가정을 택한 탁월한 선택이었지요.
친구들은 며느리 사위 자랑을 하지만 저는 아직 아이들 학교 보내고 있으니 그만큼 더 젊은 시간을 누리고 있는 셈이지요.
사업을 하는 남편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잘 생긴 아들, 희망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기 위해 태어 난 요정 같은 딸, 이렇게 네 식구가 서로 살 부비며 키득키득 살아갑니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란 거의 비슷비슷하여 제가 좋아하는 문태준 시인의 ‘개복숭아나무’로 소개를 대신 할까 합니다.
개복숭아나무
문태준
아픈 아이를 끝내 놓친 젊은 여자의 흐느낌이 들리는 나무다
처음 맺히는 열매는 거친 풀밭에 묶인 소의 둥근 눈알을 닮아갔다
후일에는 기구하게 폭삭 익었다
윗집에 살던 어럼한 형도 이 나무를 참 좋아했다
숫기 없는 나도 이 나무를 좋아했다
바라보면 참회가 많아지는 나무다
마을로 내려오면 사람들 살아가는 게 별반 이 나무와 다르지 않았다

지용문학상을 수상하여 학교 홈페이지에 소개된 일
삶을 살아가면서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떨리는 기쁨을 몇 번이나 맛볼까요?
당선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마냥 울었습니다.
만약 인간에게 울 수 있다는 기능이 없었다면 기쁨과 슬픔의 맛이 반으로 줄어들 것 같은 생각이 들던 하루였습니다.
더욱이 원고 마감 날이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거의 밤을 새다시피 퇴고를 하고,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슬리퍼를 끈 채 우체국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던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시가 좋아 시와 함께 한 긴 시간이 헛되지 않았고, 많은 나이에도 이렇게 큰 신인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다
사진 지용문학상 수상
는 자신감과 함께 평소 존경하는 신경림 선생님과 유종호 교수님께서 심사위원이셨기에 더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이영세 총장님께서도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김영숙 교수님께서도 직접 전화를 주셔서 기쁨이 배가 되었습니다.
저의 기쁨을 함께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좋은 시를 쓰도록 늘 깨어있는 의식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언론에 자주 기사가 나오는 데 요즈음의 근황은?
언론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충북의 신문인 동양일보와 옥천신문에 난 제 기사를 보고 10년간 연락이 닿지 못했던 남편의 친구가 연락을 해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곳 속초에서도 강원일보, 도민일보, 설악신문 등에 기사가 났는데 아시는 분이 신문을 보시곤 큰 꽃바구니를 보내주셔서 또 한 번 언론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대구 매일신문을 보고 연락해 온 KBS 라디오에서도 출연요청을 받아놓은 상태입니다.
5월 한 달 내내 너무 많은 축하를 받아 솔직히 부담이 큽니다.
제가 시(詩)에 매달린 것도, 대구 사이버대학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도 모두 장애가 있는 딸 덕분이었습니다. 장애아를 기르면서 사회적인 정보를 너무 몰라 어디로 나가야하는지 더듬거리기만 했습니다. 장애아를 위한 특수교육진흥법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내 방식만으로 아이를 가르치다 한계에 부딪혀 특수교육을 공부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지요.
공부를 하다보니 정말 눈이 떠졌다고나 할까요?
무엇이든 붙잡고 싶었던 심정에서 시를 쓰고 특수교육공부도 하고 했는데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지용문학상의 이름을 더욱 빛 낼 수 있는 시인으로 거듭나야겠다는 각오를 합니다.
시인으로 등단했으니 앞으로의 계획은?
지적 장애가 있는 우리 예쁜 딸이 중학교 2학년입니다. 학기 초에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는데, 아이가 부모직업란에 적어 놓은 걸 보고 온 식구가 배를 잡고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빠 직업란에는 '사업', 엄마 직업란에는 '부엌' 이렇게 써 놓았더군요. 부엌이라는 말이 얼마나 신선하고 충격적이며 가슴 설레는 말인지요?
사진-가족사진
왜 엄마 직업이 '부엌' 이냐고 물었더니 우리 딸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엄마는 맨 날 부엌에서 밥하고, 설거지하고. 나 공부 가르치고, 엄마 공부하고, 시 쓰고, 빨래도 개고,..."
계속 열거하는 예쁜 딸에게 뽀뽀를 하며 꼭 안아 주었습니다.
'그래 너니까 부엌이라는 말을 직업란에다 쓰지 어느 누가 그렇게 위대한 말을 쓸 수 있겠니?'
너무 과분한 상을 받고, 화려하게 등단 한 만큼 시인으로서의 책임감도 크게 느낍니다.
문학 활동도 적극적으로 할 예정이지만, 우선은 책을 많이 읽어야겠습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많이 못 읽어서 잠자리에 들 때면 마치 숙제 못한 아이 같은 심정으로 지냈거든요.
습작해 놓았던 많은 작품들이 몇 년 전 컴퓨터에서 날아 간 일이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정진하여 좋은 작품이 모아지면 내 이름이 들어간 시집을 내고 싶습니다.
시인이 되었어도 다시 부엌 식탁에 앉아 예전처럼 공부하고 글을 쓰겠습니다.
우리학교 학생이나 대구 사이버 대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서울에도 많은 사이버 대학이 있는데 속초에 살면서 어떻게 대구 사이버대학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얼마 전에 통화했던 KBS 라디오 작가가 묻더군요.
제가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거기가 좋아서요. 또한 특수교육학을 사이버에서 공부하는 곳은 대구 사이버대학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사실 처음엔 사이버 공부를 쉽게 생각했는데, 이 세상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지금의 제 생각입니다. 집안의 대소사나 아이가 아플 때, 그 밖의 돌발적 일들이 생겨 일정하던 시간의 룰이 깨지면 그만 강의가 밀려 많이 허둥거리기도 하였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잠언 같은 이야기지만 저는 늘 호수를 유유히 헤엄쳐가는 오리를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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