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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소개
학교법인영광학원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기독교 정신에 의거하여 초등교육, 중등교육 및 고등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대구사이버대학교, 대구대학교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설립자 성산(惺山) 이영식목사

  • 성산(惺山) 이영식 목사(1894~1981) 사진 '인생관의 바탕은 인간의 인격이다'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인격, 이상적인 인격형성이 현대 교육의 목표요 내용이다.' - 성산 이영식 -
  • 성산(惺山) 이영식 목사(1894~1981) 사진 '인생관의 바탕은 인간의 인격이다'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인격, 이상적인 인격형성이 현대 교육의 목표요 내용이다.' - 성산 이영식 -
    성산(惺山) 이영식목사 이력
    1919. 3. 1 독립운동으로 복역 1927. 4 대구 서문교회 목사 시무
    1946. 4 대구맹아학원 설립 (원장 취임) 1956. 6 한국사회사업대학 설립 (초대 학장 취임)
    1969. 5. 16 민족상 교육부문 본문 수상 1977. 11 해외 희생동포 위령 사업회 고문
학생시절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
학생 대표로서 만세 운동에 적극 가담 하였고 독립선언서 23매를 몰래 가지고 나와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 교회에서 자신의 처족 및 교인들과 합세하여 밤 11시에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비밀결사 혜성단에서 활동하며 함께 민족 운동의 궐기를 촉구하는 한편, 철시운동, 독립운동 군자금 마련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 때 '동정표시경고문'(일본인과 상거래를 중단할 것을 촉구함)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6월 복역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전국을 돌며 독립운동을 수행하다가 징역 1년 6월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장애인 교육에 새로운 장, 특수교육진흥 사업
1927년 3월 한국에 돌아와 나환자들과 함께 목회활동을 하여 경북지역 나환자들로부터 "제2의 구세주"란 아름다운 미명을 남기기도 한 그의 20년 목회 생활에서 보다 큰 뜻을 이루기 위한 육영사업 설계도는 광복기념사업으로써 장애인 교육에 새로운 장을 시작하기 위한 특수교육진흥 사업이었다. 이영식 목사는 대구맹아학교 설립으로 대구의 특수 교육의 장을 열었으며 이 맹아 학교는 '대구대학교'의 모태가 된다. 대구맹아학교는 6.25 전쟁을 겪으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도 졸업생을 배출하고 신입생을 받아들이면서 명을 이어가다가 1953년 3월 19일에 원사 신축 기공식이 있었고 이듬해 4월 13일에 대구시가 대명동 공동묘지 터 약 1만 평을 학원에 증여해 주었다. 1954년 12월 11일에 본관 건물이 완성됨으로 교사와 기숙사가 겸비된 특수학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한국 특수 교육에 힘썼으며 독립 유공 및 사회 복지사업 공로자로서 1953년 11월 보건사회부장관상, 1963년 8월 문화훈장(교육부문)국민장, 1966년 11월 문교부장관상, 1968년 3월 대통령상, 1969년 5월 5.16 민족상(교육부문), 1970년 8월 건국 25주년 기념 국민훈장 모란장, 1977년 12월 건국포장, 1990년 12월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1965년 4월 일본 후생성의 초청으로 범 태평양 지역 장애인 재활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서 참가하였고, 성산 이영식 목사의 생애와 활동은 외국에서도 높이 평가되어 교육시찰 여행 중 뉴욕에서 아메리카 출판사와 자서전 출판계약을 하게 되었으며 1970년 9월에 미국 던롭출판사로부터 "I Cast out Fear"를 출판하였다.
  • 1
    민족상 교육 부분 본상 수상
    민족상 교육 부분 본상 수상
  • 2
    1946년 대구맹아학교 설립 기념 단체사진
    1946년 대구맹아학교 설립 기념
  • 3
    맹아학교 교사 신축 기념 단체사진
    맹아학교 교사 신축 기념
  • 4
    사이판의 전몰무명 한국인 묘비 제막식
    사이판의 전몰무명 한국인 묘비 제막식
인간 존업의 사업
이영식 목사는 80세가 넘어서도 인간 존엄의 사업을 하였는데 그 대표적 사업 중 하나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사이판, 티나안 등에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하는 것이었다. 1977년 보건복지부 '제외동포 모국 방문 추진 위원회'에 전사자의 유해를 봉환할 수 있도록 봉환 허가를 받고 추진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5,000여 구의 시신을 안장했다. 건강한 삶을 살다가 1981년 12월 괌도에서 생을 마감한 이영식 목사는 이태영 대구대학교 초대 학장에게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유언할 정도로 정치와는 거리를 두었다. 독립투사이지만 그것이 민족의 고통과 좌절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지 자신의 입신양명과는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이영식 목사는 오히려 그늘진 곳에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오늘의 학교법인 영광학원 산하 기관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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