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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심영섭교수] 영화평론가 심영섭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글쓴이
담당자 behavior@dcu.ac.kr)
작성일
2006.09.07
조회
451
게시글 본문
[일 시] 2006년 08월 31일

[내 용] 맥스무비 칼럼 -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기재

[장 소] 맥스무비

상담자로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사람들은 “언제 상담을 관둬야 하는가?”라고 물어 볼 때가 있다. 그 질문은 “언제 사랑을 관둬야 하는가?”라고 물어 보는 것만큼이나 곤혹스럽고 모호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상담은 내담자(상담 받는 사람)가 ‘이 상담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랄 때 그때가 바로 ‘the end’라는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인 것이다.

상담이 잘 되는 날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고, 누군가의 인생에 뿌듯이 끼여 들어 옆 좌석에 앉아 함께 운전을 한 것 같고, 또 마음의 오솔길을 단 둘이 산책 한 것 같기도 하다. 비록 한 순간이라도 우리는, 내담자와 상담자는, 같이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좋은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가끔 만나는 ‘인생의 영화’들은 삶의 단층 속에 깊이 깊이 숨어 들어 나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뿌리를 내린다. 조그만 씨앗 같던 그것들이 이윽고 잎을 내고 새 순을 틔우며 마음속에서 자라는 순간 나는 영화로 밥을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해 자다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다.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봤을 영화. 이젠 글까지 쓰며 돈까지 받으며 본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많이 보는 거다. 그건 이미 트뤼포도 말한 영화 사랑의 ABCD에 해당하겠다. 나는 여기에 ‘많이’라는 말이 ‘양’이라기보다 ‘질’적인 측면의 ‘영화와 함께 있기’라고 생각한다.

일단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때 팝콘을 먹지 않는다. 어떤 때는 배고픔을 살짝 속이는 정도로 먹고 아니 굶고 들어가기도 한다. 좋아진 영화는 꼭 다시 본다. <올드보이>때처럼 앉은 자리에서 내리 세 번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보면 영화에 대한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기 위해 여러 사람을 파트너로 바꾸어 가며 보기도 한다.

대사를 외우고 배우 얼굴이 눈을 감아도 둥근 달처럼 떠오르는 이 지경이 되면, 굳이 물리적 영화를 비디오에서 리플레이해서 다시 틀 필요가 없다. 언제든 마음속에 머릿속에 가슴속에 영혼 깊이 각인된 영화를 턴 온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때는 마음의 극장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카우보이가 말을 달리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찌푸린 얼굴이 영사된다. 일종의 내면의 영화, ‘inner movie’가 되어버린 어떤 영화들이 많아질 수록, 저절로 영화에 대해 할 말이 아니 쓸 말이 생기게 되어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이렇다. 미용사가 이미 자기가 깎을 머리를 지금 앉아 있는 손님의 머릿속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가위로 오리는 수준이 아니라, 황야에서 말을 달리듯 냅다 보이는 대로 잽싸게 가위놀림을 하게 된다. 질적으로 영화를 보게 될 때, 영화는 귓속에다 대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통찰들을 속삭여 준다. 그때는 손이 글보다 먼저 자판을 달리고, 자판보다 먼저 써야 할 말들이 질풍노도처럼 귓가를 스친다.

그렇게 글을 쓰고 영화계에서 뿌리 내리게 된 어느 해던가, 나에게도 갑자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화가 어느 순간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다. 마치 내 눈이 미세한 카메라가 된 듯이 컷들이 툭툭 불거져 보이면서, 이 컷들이 붙인 이음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 텍스트 위주의 글쓰기에 변화가 생겨났다. 영화를 보며 자꾸 이상한 질문을 하게 된다. ‘아 저 컷 다음에 왜 저 컷을 붙였을까’, ‘저 장면은 어디서 찍었을까’, ‘카메라는 어디에 있는 거지’ 등등등.

이젠 머릿속에서 영화가 영사가 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둥둥 날던 컷들이 서서히 붙고, 이어지고, 또 본래 봤던 영화에서 컷들이 순서나 각도를 달리 바꿔 보기도 한다. 이제 내면의 영화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즉물적으로 내 앞에서 자신이 만들어졌던 과정의 비의를 보여준다. 그러면 이젠 거꾸로, 엘리베이터에서 카메라를 가져다 대거나 한 평도 안 되는 방에서 30분 이상 버텨낸 감독들이 존경스럽고, 카메라맨이 위대해 보이고, 배우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한다.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남편은 이제 찍는 것만 남았다고 하면서, 찍기만 하면 이혼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젠 어디로 갈까. 사거리 교차로 앞에서 바람이 부는 황야에서 혼자 서 있다. 이제는 뭘 더 해야 할까. 아마도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보다 죽든가, 내 이름자 박힌 영화를 틀던가, 영화를 가르치다 고꾸라지던가……. 뭔가 끝을 보는 것만이 남아 있다는 진한 예감을 지울 길이 없다.

그리하여 영화여 고마웠다오. Thank you for the movie!! 영화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 때, 나는 이제 영화와 헤어져도 좋은 날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날이 아주 멀리 오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아주 빨리 들이 닥칠지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극장에 간다. 영화 보러 간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러 간다. 영화와 조금만이라도 더 함께 살려고, 그곳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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