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성 메뉴

본문 영역

페이지 정보

대학생활
 

게시글 내용

게시글 정보
제목
[심영섭교수]한겨레 칼럼 - ‘야누스의 나이’ 무엇을 할 것인가
글쓴이
담당자 behavior@dcu.ac.kr)
작성일
2006.09.08
조회
393
게시글 본문

[일      시] 2006년 08월 29일

[내      용] 한겨레 21 칼럼 - ‘야누스의 나이’ 무엇을 할 것인가 게재

‘야누스의 나이’ 무엇을 할 것인가

심리학적으로 서른 다섯은 삶에서 죽음 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시기
386과 N세대에 낀, 세계화의 막차를 탄 세대가 새로운 내일을 꿈꾼다

서른다섯 해 되던 날, 나는 재혼을 했다. 아무도 결코 결혼식을 올릴 것 같지 않은 1년의 가장 햇볕 짱짱한 날에, 웨딩드레스 대신 원피스를 입고, 금반지 하나 나누어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가운데 다시 일부일처제의 제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재혼을 했던 그해에 나의 절친한 친구 둘은 또 다른 선택을 감행했다.

하나는 잘나가는 변호사 남편을 놔두고 덜컥 이혼을 했고, 다른 친구는 결코 가부장제의 금을 넘어서지 않을 작정인 양 자신의 명의로 집을 샀다. 지금은 재혼녀, 이혼녀, 미혼녀가 되어버린 우리는, 가끔 술을 마시며 그때를 회상한다. 그때 재혼이란 걸 하지 않았다면, 올해 더반영화제에 가서 만난 15년 연하의 남아프리카 총각을 그대로 자빠뜨렸을지 누가 알겠냐는 둥, 그때 하늘 같은 변호사 남편 자꾸 ‘햇반’ 먹이지 않고 조용히 기죽어 지냈다면 지금 즈음 꽃방석에 앉지 않았겠냐는 둥. 이 말 듣고 혼자 살던 친구가 조용히 웃는다. 본인은 이제 마스터베이션하는 것도 지쳐서, 아예 엉덩이 밑에 손을 한참 깔고 얼얼하게 한 뒤 ‘그걸’ 한단다. 좀 딴 사람이 만지는 것처럼 느끼고 싶어서.

첨예한 부익부 빈익빈의 세대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스타벅스제’ 여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서른다섯을 넘긴 ‘된장녀’가 될 수 없어 슬픈 짐승인, 술 취한 여자들의 취중 진담들이다. 서른 다섯. 대한민국의 서른다섯인 여자들에게 이건 순전히 두 번째 선택의 기회다. 보통 스물다섯부터 서른 초반에 결혼한 이 땅의 여자들은 집이든 남편이든 애인이든 ‘살까 말까 할까 말까’로 고민한다. 사랑도, 불륜도, 결혼도, 이혼도 대개는 두 번째 선택에 와 있는 여자들. 모 결혼업체 사장으로 있는 분에게 직접 들었는데, 여자의 경우 서른다섯 이후에는 재혼 리스트에 오르기도 힘들단다. 이상하게 서른다섯 이후의 남자들일수록 젊은 여자를 더 찾게 된다는데, 젊음 속에서 죽음을 속이고 싶은 마음이란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을 사전에서 팍팍 지우고 싶어진다. 더 기가 막힌 건 서른다섯을 넘기면 거꾸로 여자들도 슬슬 가부장제 편입에 대해 배포가 세어진다는 거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통장에 얼마큼씩 돈이 쌓이기 시작하면, 금력의 힘이 시력도 나쁘게 하는지, 원래 동물심리학적으로 보면 최상위 여자와 최하위 남자가 남게 마련이어서, 여자들과 달리 아직까지 싱글인 총각들은 쭉정이라는 근거 없는 이론을 꺼내기도 하고. 유부남이 정말 유난히 부담없는 남자가 되어 총각들의 수요 부족에 따른 ‘대체제’로 보이기 시작할 때, 그러면서도 그들의 괜한 추근거림에 자존심에 팍 댄싱 가는 소리가 들려올 때, 서른다섯의 봄날, 많은 여자들이 마침내 거금을 주고 헬스장 회원권을 끊는다.

서른다섯.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비혼자는 매우 드문 용어이다. 아직도 미혼과 이혼의 경우는 ‘제도권에서 탈락한 열등한 인간’이라는 시선과 ‘아무 대가 없이 자유롭고 콧대 높은 인간이라 저렇게 제 하고 싶은 것 하고 산다’는 시선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물론 똑같은 두 번의 선택일지라도, 본인이 스물에서 서른까지의 경력 관리와 자금 관리에 따라 서른다섯의 선택에는 천양지차가 나기 마련이다.

스무 살 때는 모두 다 천편일률로 배낭여행을 갔지만, 서른다섯 살 명절에 “결혼하라”는 일가 친척들의 합창 소리가 죽기보다 싫을 때, 한쪽에선 전을 부치며 “나도 아직 결혼 안 했으니 세뱃돈 주세요”라는 목소리를 꿀꺽 삼키는 쪽도 있고, 해외에 방 하나 잡고 느긋하게 쇼핑으로 기분을 푸는 쪽도 있다.

대한민국의 서른다섯은 세계화의 막차를 탄 세대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12월 구제금융 당시, 스물여섯이었을 그들은 디지털 문화, 가부장 문화의 쇠락, 세계화로 이어지는 격랑을 성공적으로 갈아치웠느냐에 따라 첨예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낳는다. 유동성, 기획성, 직업에서의 순발력 등 그들은 과거 세대와 모든 면에서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부여받았다.

훌쩍 새로운 모험으로 떠나다

심리학에서는 흔히 서른다섯 살을 ‘야누스의 나이’라고 부른다. 인생의 딱 반환점을 돌기 시작하는 이 나이는 드디어 얼마나 살아야 어른이 되나를 헤아리던 삶 쪽의 얼굴에서 ‘얼마를 살 수 있을까, 얼마 남았을까’를 헤아리는 죽음 쪽으로 얼굴을 돌리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것이다. 시간 관념이 달라지면 미래나 과거를 헤아리던 방식도 달라져서, 서른다섯 살 이후에는 정말로 죽음 안에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추동으로 살아가려 하기도 하고, 이전에는 원치 않던 안정감을 바라는 수도 있다. 대개 버티다 버틴 비혼자들의 청첩장의 상한 연령을 보라. 여자 나이 서른다섯, 남자 나이 마흔 즈음이 대부분이다.

한편 C. G. 중(Jung) 같은 학자들은 중년이 되기 시작하면, 이전에 쓰지 않던 열등감, 심리적 기능을 보상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니까 이전에 사실은 외향성이 아닌데 군대에 가서 외향성을 학습한 서른다섯이 갑자기 내향적이 될 수도 있다. 지극히 여성적인 서른다섯의 아가씨도 이 나이가 되면 갑자기 씩씩해진다. 무엇보다 아직 마흔이 남아 있는 시기, 어떤 이들은 진정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깨닫고 훌쩍 이전의 직업을 내던지고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잉게보르크 바하만은 소설 <삼십세>에서 30이란 나이를 (바하만이 좀 겉늙어서 그렇지, 서른다섯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나이, 지나간 모든 세월을, 경솔하고 심각했던 그 시절을,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자신이 차지했던 모든 공간에 기억의 그물을 던지는 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서른다섯이 되면, 마침내 10대 시절 세상에 내가 누군인지를 알리는 문제에 얽매였던 것처럼, 세상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기 시작할 것이다. 심리학자인 에릭슨의 말을 빌리면, 서른다섯은 자신이 ‘생산성’의 시절에 뛰어들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할 나이이고, 그 생산성은 책이어도, 아이여도, 사회봉사여도, 새로운 직업과 취미여도 좋다. 그래서 우리의 브리짓 존스는 오늘도 열심히 담배를 피우면서도 자전거를 타고, 우리의 김삼순은 빵을 만들면서도 연애를 한다. 서른다섯, 위기의 시기. 그러나 아직은 기회의 시기. 정말 중년이라는 딱지만큼은 사절인 대한민국의 서른다섯 베이비 붐 세대들은 낮에는 돌 던지고 밤에는 막걸리를 마셨던 386 세대와 기능적인 소비대신 기호적인 소비를 당연시하는 N세대 사이에 끼인 채, 내일을 꿈꾼다. 사춘기 대신 사추기의 입구에서…. 서른다섯의 결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게시글 메모
  

상기콘텐츠 담당부서

부서명
대구사이버대학교
연락처
053-859-7500